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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국제관계이해 국제학술대회

대몽항쟁의 세계적 기억: 강화 천도와 제국 질서 속 고려의 선택




1. 배경

13세기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 걸친 몽골의 등장은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거대한 파동이었습니다. 1231년 시작된 몽골의 침입에 대응하여 고려가 단행한 ‘강화 천도(1232년)’는 단순한 피난을 넘어, 제국 질서에 저항하며 독자적인 국가 정체성을 유지하려 했던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강화도는 이후 38년간 고려의 도읍인 ‘강도(江都)’로서 항전의 중심이자 외교와 문화가 결속된 공간으로 기능했습니다. 본 대회는 다가오는 2032년 강화 천도 800주년을 준비하며, 대몽항쟁을 한국의 민족사를 넘어선 ‘세계적 기억’으로 재정의하고자 합니다.



2. 목적 및 목표

본 학술대회는 대몽항쟁의 역사를 세계사적 차원에서 군사, 외교, 문화 등이 결합된 '저항과 공존'의 사례로 조명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13세기 몽골이 구축한 세계 제국 질서 속에서 고려가 단행한 강화 천도를 역사학, 국제관계학 등 다학제적 접근을 통해 제국 질서와 주변국과의 관계 구조를 '기억의 문제'로 다루는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특히 강화 천도 800주년을 앞두고 강화도 내 고려 유적지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학술적 근거를 확보하고, 역사 기록을 현대적 국제 담론 및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확장하여 민족사에서 세계사로의 국제적 서사 구축과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 본 대회의 핵심 목표입니다.



3. 행사 개요

일시 : 2026년 6월 18일 (목) 13:00 – 16:00

장소 : 대한민국 서울 국회의사당 의원회관

주최 : 국제관계이해연구소(IUIR), 배준영 국회의원실

주관 : 지속가능발전평화위원회(SDGPC)

협력 : 공주대학교 공주학연구원

대상 : 대몽항쟁 관련 학자, 정부 관계자 및 시민 약 30명



4. 주요 프로그램 (안)

축사 : 배준영 국회의원, 강화 군수 등 주요 외빈

기조발제 : 윤용혁 교수 (공주대학교)

  • 주제 : 1232년 고려의 강화천도와 강도시대의 의미 - 강화천도 800년 준비를 위하여

  • 내용 : 몽골 침입이라는 세계사적 사건 속에서 강화 천도가 갖는 역사적 의미를 점검하고 5년 뒤 맞이할 800주년의 준비 방향 제시, 전문가 발표 및 토론: 역사학 및 국제관계학 전문가들의 다학제적 발표 (기억의 전승과 세계유산적 가치를 중심으로)


5. 기대 효과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대몽항쟁 관련 잠재 유산들이 지닌 독보적 가치를 국제 사회에 알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범국민적 공감대와 학술적 기반을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는 한국 중세사의 특정 사건을 지역적 관점에서 벗어나 세계사 및 국제관계학의 주요 담론으로 편입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또한, 800년 전 강화도가 지녔던 '항전과 평화'의 상징성을 현대의 지속가능발전(SDG 11.4 문화유산 보전 등) 및 복잡한 국제관계 속에서 공존을 모색하는 글로벌 시민 의식과 연결함으로써, 강화 지역의 역사적 자산을 미래 지향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로 승화시키고 관련 인식 제고를 이끌어내는 선도적인 역할을 할 것입니다.



<기조발제 요약>


1232년 고려의 강화천도와 강도시대의 의미 :

강화천도 800년, 준비를 위하여

윤용혁 (공주대학교 명예교수)



1. 1232년,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강화에의 천도

13세기의 세계 역사는 ‘몽골의 시대’이다. 1231년 몽골이 고려에 대한 침략을 개시하였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고려는 도읍을 개경에서 강화도로 옮기는 전격적인 조치를 취하게 된다. 천도 방침 확정에서 실행까지 불과 보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은 전격적 조치였다는 점이 무엇보다 인상적이다. 이러한 결단은 당시 정치권력이 무인집정자 최우에게 집중되어 있었던 구조와 몽골이 가진 전술적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이 내적 조건이 되었다. 강화천도는 임시적 피란이 아니고 처음부터 ‘천도’였다는 점에서 사태의 장기화를 충분히 예상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화도를 거점으로 한 고려 무인정권의 강경한 저항으로 몽골의 고려 정복 일정은 예상보다 지연되었으며, 고려가 몽골에 의한 직접 지배를 면하고 왕조의 정통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장기 항전이 한 배경이 되었다.



2. 천도가 가져온 것들

강화천도는 중세시대 대규모 인구 이동의 사례로 기억될 만하다. 개경의 ‘10만 호’ 인구가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로 이동하였으며, 주거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의 이동이었기에 부실 건물과 과밀 상태로 인한 대형 화재가 빈발하였다. 강도시대 38년간은 신도시 건설과 함께 강화도 연안의 간척 사업이 끊임없이 진행되었다. 부족한 농토 확보와 방어시설 구축을 위해 해안 제방 구축이라는 건설공사가 병행되었다. 또한, 강화도는 물에 취약한 몽골군의 약점에 대응할 수 있는 섬이었으며, 바닷길을 이용한 조운제는 전란 기간 중에도 활성화되었다. 태안 마도3호선 등 수중 발굴 유물은 강도시대 말기까지 강화도에 이르는 해로가 여전히 활성화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국제적 연대에 있어서도 남송 및 일본과의 반몽 연합 전선 구축을 구체적으로 모색하였다는 점이 기록을 통해 확인된다.



3. 잊혀진 천도의 기억과 ‘강화천도 800년’에의 기대

1270년 개경 환도 이후 강도의 역사는 원 간섭기 1백 년을 거치며 의도적인 지우기에 의해 너무나 빠르게 잊혀진 역사가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이미 관련 정보가 남아있지 않았으며, 근현대에 들어 정비된 유적들도 상당수 조선시대의 것이거나 학술적기초 조사 없이 복원된 한계가 있다. 현재 고려시대 강화도성에 대한 논의의 중심은궁터와 3성(내·중·외성)의 위치를 확인하는 과제에 놓여 있다.


강화도는 8백 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남북 대치의 긴장된 도시이며, 주변 열강과의 국제적 정세도 민감한 상태이다. 6년 후인 2032년은 고려의 강화천도 800년이 된다.


강화 유적은 중세 국가인 고려왕조의 도성 유적으로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할 가치가 충분하며, 13세기 몽골 정복기에 대응했던 ‘전시 도시’의 한 유형으로서 주목할 만한 국제적 의미를 갖는다.

앞으로의 강화 연구는 13세기 ‘고려 도성’이라는 포괄적 개념을 가지고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하며, 강화가 ‘중세의 역사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 ‘강화 천도 800년’을 향한 시민운동의 확산과 진도, 제주도를 잇는‘삼별초 네트워크’, 그리고 국내외 항몽 전쟁 관련 도시들과의 연대를 통해 그 역사적 의미가 한반도와 동아시아 세계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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